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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in SF Bay Area | 미국 일기/Cultural Life 문화 생활

오징어 게임 자막 번역(Subtitle translation of Squid Game)

by TMT Story 2021. 10. 6.

From istockphoto

 

 

번역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자막 번역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눈과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최근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의 자막과 관련된 얘기해볼까 해요.

 

이번 글은 번역 품질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영상 번역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오징어 게임"의 예를 들어 볼게요.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우선 이 작품에 참여하신 모든 번역 작가님, 감수자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쓰는 내용은 제 경험에 국한되어 있으니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

 

 

Screenshots from YouTube and Netflix


얼마 전,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쓴다는 한 틱톡커가 '오징어 게임'의 영어 번역이 엉망이라며 지적하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특히 한국어를 못하는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트위터 유저들이 언급한 것처럼, 이제 겨우 명성을 얻게 된 한국 드라마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 마음이 불편했어요. 물론 이게 번역가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며, "제대로 대우를 안 해주는 번역 시장 때문"이라는 위로하는 듯한 글도 올렸지만, 그와 상반되게 “나한테 주면 돈 안 받고 봉사 활동으로 해주겠다”라는 말까지 하던데요. 솔직히 번역가에게 이보다 더 상처되는 말이 있을까 싶어요. 게다가 이분의 글이 여러 영어 매체에 복붙 되면서 일파만파 퍼지고 있고 국내 기사도 나왔더군요. 저 같은 조무래기(?) 번역가는 품질 논할 처지는 아니니, 일단 영상 번역 체계를 설명해 볼까 합니다.

오늘은 CC와 Subtitle의 차이, 넷플릭스의 가이드라인, 그리고 완벽한 번역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1) Closed Captioning(CC)과 Subtitle의 차이

 

Closed Captioning(CC)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입니다.

미국에서는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의 법에 의거, 방송사에서는 영어 작품에 한해 반드시 CC를 넣어야 한다고 해요. 출연자가 말하는 대사 외에도, 화면 밖에서 나는 소리를 설명해줘야 한다는 점이 subtitle과 다르죠. 보통 소리 설명과 말하는 사람의 ID를 넣습니다. 그리고 영어 CC에서는 오디오 언어와 관계없이(즉, 영어로 말하든, 한국어로 말하든) 영어 자막이 나옵니다. 제3의 외국어로 말할 경우, 시청자가 못 알아들어도 되는 상황이면 (Speaking in Japanese) 이런 식으로 부연 설명이 나오죠. 또 하나, '음, 아...' 이런 뜻이 없는 표현도 넣어줘야 해요.

Subtitle은 오디오로 나오는 언어를 시청자가 모를 때 활용할 수 있는 보조 자료입니다.

음성을 번역해서 자막으로 옮기는 거죠. 그래서 음성이 한국어일 때는 영어 자막이 나오지만, 음성이 영어인 경우엔 영어 자막이 안 나옵니다. 화면 밖에서 나는 소리를 설명할 필요는 없는 반면, 화면에 나오는 글자도 번역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음, 아...'와 같은 의미 없는 표현은 다 뺍니다.


CC와 Subtitle의 차이를 예시로 살펴볼게요.

예 1) “오징어 게임”의 첫 대사로 나오는 기훈의 내레이션

Screenshots of Netflix "Squid Game"

한국어 자막:    (기훈) 우리 동네에선 ‎그 놀이를 '오징어'라고 불렀다
영어 CC:         [man] In my town, we had a game called the "Squid Game."
영어 Subtitle: My town called that game "the Squid Game".

 

여담이지만, 재밌는 건 한국어 자막에서는 내레이터를 기훈이라고 표시하지만, 영어 자막에서는 그냥 남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보통 시청자의 입장에서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미리 밝히지 않는 편이거든요. 기훈의 목소리라는 걸 알더라도, 아직 모르는 시청자들을 위해 안 적는 편이죠. 예를 들어, 한미녀가 자기 이름을 한미녀라고 밝힌 다음에야, 발화자를 설명할 때 참가 번호가 아닌 [한미녀]라고 씁니다.

 


예 2)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대사를 하는 장면

Screenshots of Netflix "Squid Game"

한국어 자막:     ‎[아이들의 환호성] ‎만세!
영어 CC:          Victory! [kids cheering] 
영어 Subtitle:  Hooray!


보시다시피 CC에서는 화면을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설명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영어 자막이 CC와 Subtitle에서 다르게 번역되었어요. 이건 넷플릭스의 정책 및 가이드라인 때문입니다.


2) 자막 제작 시 넷플릭스의 가이드라인
넷플릭스는 OTT 혹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선두주자로, 자막 관련 가이드라인 역시 언어별로 아주 자세히, 꼼꼼하게 나와 있습니다.

 

물론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마찬가지인데요. 넷플릭스의 경우에는 가이드라인을 누구나 볼 수 있어요.

영어 자막 관련 가이드라인: https://bit.ly/3lbJbTr | 한국어 자막 관련 가이드라인: https://bit.ly/3Dg782o

예를 들어, 한 줄에 들어가는 캐릭터 수(영어: 42자, 한국어: 16자), 줄 나눔 방식, 제목은 번역하지 않는 등 아주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따라야 합니다.

 

영어 자막 가이드라인 중에, Subtitles for the Deaf and Hard of Hearing (SDH)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따로 적혀 있습니다 (CC와 거의 비슷하지만 인코딩의 차이).

“Where content has been dubbed into English, please refer to the dubbing script or dubbed audio as the basis for the SDH file and ensure that the two match as much as reading speed and timings allow.”
영어로 더빙이 된 내용일 경우, 더빙 스크립트 혹은 더빙된 오디오를 참고해서 SDH 파일을 만들 것. 읽는 속도와 타이밍이 잘 맞는 한, 둘을 최대한 맞출 것.

다시 말해, 웬만하면 더빙된 스크립트를 그대로 자막으로 옮겨서 CC로 쓰라는 거죠.

그런데 더빙은 일반 자막과 많이 다릅니다. 내용이 조금 달라지더라도, 입 모양과 말하는 속도에 최대한 맞춰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더빙 대본을 번역하시는 작가님은 자막 번역가님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빙 번역은 감수 작업만 해봤고, 직접 번역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또, 자막과는 달리, 구어체를 써야 하고 맞춤법/문법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 있습니다.

 

자막 또한 시공간적인 제한이 있지만(지금 제가 하듯, 이렇게 괄호 열고 부연 설명 하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최대한 간결하게 써야 해요.), 화면 전환에만 잘 맞춰주면 입모양과 벗어나더라도 봐주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6화 첫 장면에서 한미녀의 대사:

Screenshots of Netflix "Squid Game"


한국어 자막:    뭘 봐?
영어 CC:         Go away.
영어 Subtitle: What are you looking at?

 

“뭘 봐?”라는 짧은 대사와 입/호흡/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영어 CC에서는 가볍게 ‘꺼지라’고 했습니다. 반면, 영어 자막에서는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죠. 의미는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뭘 봐? 꺼져'는 한 세트로 봐도 될 것 같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한국 기사에서도 실렸던데 '아주머니'가 CC에서는 'Grandma'로, 영어 자막에서는 'ma'am'으로 번역됐어요. 

ma'am은 의미상으로는 아주머니가 맞는데, 부정적인 connotation/뉘앙스도 아주 조금 있어요. 예전에 누군가 어떤 여자 교수님을 ma'am이라고 불렀을 때, 교수님께서 '그렇게 부르니 자기가 나이 먹은 것 같다'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시는 걸 봤어요. 사실 Dr. 였기에 Dr.xx 혹은 Prof.xx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상대의 직책을 아는 공식적인 상황에서 여자라고 무조건 ma'am이라고 하는 건 실례인데, 재치 있게 돌려서 말한 거였어요(미국 이야기라 다른 영어권 나라는 다를 수도 있어요).

 

드라마에서 한미녀처럼 이 정도로 길길이 날뛰려면 할머니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자기 할머니가 아닌 다음에야 grandma라고 부를 일은 없고, ma'am과는 차원이 다르게 모욕적인(?) 표현이니까요. 그런데 이 말을 한 기훈은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절대 아니니 'ma'am'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즉, 기훈은 'ma'am'이라고 한 말을, 한미녀는 'grandma'로 받아들인다는 건데, 그건 '아줌마'라는 한국 단어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뉘앙스를 담는 영어 단어는 없는 것 같아요. 어렵죠?ㅠㅠ


3) 완벽한 번역이 과연 존재할까?  

유명한 번역 작가님이 '완벽한 번역이란 없다'라고 하시는 걸 읽었어요. 그 글을 읽고 저도 생각해 봤죠.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까? 누구에게 완벽하다는 것일까? 보는 사람에게? 번역자에게? 과연 모두를 만족시킬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까?

 

최선은 있을지라도, 완벽은 힘들겠죠. 물론 시청자 입장에서 성에 차지 않을 수 있어요. 오역은 없지만 번역이 밋밋하거나 재미없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프로그램 번역 전체의 품질을 평가절하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프로그램이 최상의 품질이면 좋겠지만, 이렇게 넘쳐나는 콘텐츠를 번역가 탑 10명이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거기다가 대우라도 좋으면 억울하진 않지... 하... 갑자기 눈물이...ㅠㅠ


저 역시 부끄럽지만 오역, 오탈자, 어색한 번역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한 번은 제가 한 번역이 짤로 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는데, 그나마 번역 품질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고 그냥 웃겨서 만든 캡처 모음이었더랬죠. 그 번역을 한 지 조금 지난 다음이었는데, 캡처된 걸 보고 좀 더 다듬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에 이불 킥 꽤나 했답니다. 그렇듯 fresh eye로 새로 보면 수정할 부분이 눈에 보이기 마련인데, 영어든 한국어든 드라마 번역 특성상 turnaround가 빨라서 며칠 뒤에 다시 보고 고칠 여유는 잘 없습니다.

어쨌든 그런 만큼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매일매일 겸허해지면서 일하고 있어요. 번역 완료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보는 습관도 생겼죠.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매일 깨닫고, 그만큼 앞으로 또 뭘 배울지가 기대되며, 정말 신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 덕분에 다른 작가님의 번역을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 습관도 생겼어요. 자막 뒤에는 그 자막을 만든 번역가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되었거든요. 번역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대해서 함부로 비판하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번역이라는 일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오늘 클럽하우스에서 블로그에 이 글을 쓸 거라고 얘기했을 때, K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성장을 위한 비판이어야 좋다.

정말 공감합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서 다 같이 성장하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이 작품에 참여하신 모든 번역 작가님, 감수자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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